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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자연의 시] 풍경의 깊이/김사인

by 행복한 엔젤 2017.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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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시/풍경의 깊이/김사인

 

자연의 시

풍경의 깊이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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