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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오늘도 절에 가서/보리수나무/지는 꽃 보며 - 도종환

by 행복한 엔젤 201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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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절에 가서/보리수나무/지는 꽃 보며

 

오늘도 절에 가서

보리수나무

지는 꽃 보며

도종

 

 

 

오늘도 절에 가서

도종환

 

오늘도 절에 가서 절집만 보고 왔다

요사채 아궁이 동자승이 두드리던 부지깽이만한

말씀 한 도막 못 얻어왔다

오늘도 절에 가서 절 뒤의 산줄기만 보고 왔다

오늘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왔다

십 년 넘게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마음속 한치도 못 들어가본 사람은 더 많았다

 

 

 

보리수나무

도종환

 

보리수나무 잎이 지고 있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당신은 말씀이 없으셔

사방은 적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뒷산 숲도 맞배지붕 위에 내려와

턱을 고이곤 먼 데 하늘을 바라볼 뿐

보리수나무 잎만 가끔씩 지고 있었습니다

범종 소리 사라진 쪽 바라보며

말이 없으신 당신을 쳐다보다

보리수 그늘 돌아나오는 저녁

쯧쯧, 번뇌의 속옷은 그냥 둔 채

겉옷만 갈아입고 싶어하다니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리수 열매가 짧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는 꽃 보며

도종환

 

꽃도

윤회하는 걸까

지는 저 꽃잎들은

이제 업을 다 벗고 가는 걸까

 

돌아오는 새들은

삼천대천세계 다 지나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나만 아직도

못 벗고 있는 걸까

업의 그물

육도윤회의 이 굴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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