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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고요한 물/깊은 물/맑은 물 - 도종환

by 행복한 엔젤 2017.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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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물/깊은 물/맑은 물

 

고요한 물

깊은 물

맑은 물

도종환

 

 

 

고요한 물

도종환

 

고요한 물이라야 고요한 얼굴이 비추인다

흐르는 물에는 흐르는 모습만이 보인다

굽이치는 물줄기에는 굽이치는 마음이 나타난다

당신도 가끔은 고요한 얼굴을 만나는가

고요한 물 앞에 멈추어 가끔은 깊어지는가

 

 

 

깊은 물

도종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앝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이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맑은 물

도종환

 

맑은 물은 있는 그대로를 되비쳐준다

만산에 꽃이 피는 날 산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잎 하나 남지 않고 모조리 산을 등지는 가을날은

쓸쓸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푸른 잎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은 돌아오는 모습 그대로

새들이 떠나는 날은 떠나는 모습 그대로

더 하려하지도 않게 더 쓸쓸하지도 않게 보여준다

더 많이 들뜨지 않고 구태여 더 미워하지도 않는다

당신도 그런 맑은 물 고이는 날 있었는가

가을 오고 겨울 가는 수많은 밤이 간 뒤

오히려 더욱 맑게 고이는 그대 모습 만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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