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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그해 봄/병 - 도종환

by 행복한 엔젤 20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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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병

 

그해 봄

도종환

그해 봄

도종환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나는 지쳐 쓰려져 있었고

병든 몸을 끌고 내다보는 창 밖으로

개나리꽃이 느릿느릿 피었다

생각해보면

꽃 피는 걸 바라보며 십 년 이십 년

그렇게 흐른 세월만 같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고 춘분이 지나고

들불에 그을린 논둑 위로

건조한 바람이 며칠씩 머물다 가고

삼월이 가고 사월이 와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점점 아득하고

꽃 피는 걸 기다리며 나는 지쳐 있었다

나이 사십의 그해 봄

 

도종환

 

마음속 불꽃이

병이 된다

가슴속 북풍이

병이 된다

 

불 같은 그리움

얼음 같은 외로움이

병이 된다

 

기나온 내 생애의

발자국마다

나로 인해 내린 비가

병이 되어 고인다

 

불 타며 불 타며

병이 된다

바람 불어 바람 불어

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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