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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시/풍경의 깊이/김사인♬
자연의 시
풍경의 깊이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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