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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모습

80대 백발이지만, 마음만큼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by 행복한 엔젤 202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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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후, 송송할매는 뭔가를 들고 거실로 나오십니다. 보라색 플라스틱 작은 볼과 검정색의 빗, 그리고 비닐장갑.

송송할매의 모습이 웬지 불안해 보여 얼릉 비닐장갑을 꼈습니다. 염색을 해드린다고 하니, 내심 좋아하시는 눈치십니다. 이게 뭐라고.

긴 비닐장갑으로 무장한 후, 서랍에서 바세린을 꺼내어 머리카락과 맞닿는 살부분을 발라드렸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한올한올 염색약을 머리카락에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염색약 냄새가 콧끝을 살짝 자극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송송할매와 딸의 소소한 행복이고, 추억 만들기니깐.

보라색 볼에 담긴 염색약의 양을 보니, 웬지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염색약이 남았습니다.

젊은시절, 송송할매의 풍성했던 머리숱은 어디로 온데간데 없고. 백발의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쓱쓱싹싹.

염색을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송송할매의 머리는 좌우로 흔들거립니다. 앉아서 스르르 졸고 계십니다.

염색약이 나쁘다고는 하지만, 80대의 송송할매는 백발로 다니고 싶지 않으신겁니다. 백발로 다니면 웬지 마음까지 늙어버릴 것 같다고 하십니다.

송송할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가 좁아보이십니다. 작년 여름에 텃밭을 가꾸신다고 억척스럽게 일하신 뒤, 몸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말려도 잘 듣지 않으십니다.  분명 체력이 달렸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하실까요? 취미로 텃밭을 가꾸는 거라고 하시지만 제가 봤을 때는 결코 취미가 아닙니다. 격한 일로 보입니다.

방문에도, 바닥에도. 염색의 흔적이 살짝살짝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흔적조차 감사합니다. 그리고 좀 더 많이 송송할매의 머리를 염색해  드리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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