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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원시림의 성자 슈바이처박사

by 행복한 엔젤 2018.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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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원시림의 성자 슈바이처박사


 

슈바이처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속 한 자락에 깊게 남아 있는 분이다. 하지만 세월속에 묻혀 잊고 지낸다. 소위 있는집 사람들의 갑질 논란이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마음이 씁쓸한 뿐이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이 더 많고, 좋은글을 통해 마음이 상쇄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다시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박사가 되었다. 그러고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적도아프리카(현 가봉공화국) 랑바레네로 떠나 그곳에서 병원을 짓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1965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랑바레네의 원시림 속에서 흑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는 상금 전액을 털어 나환자촌을 세웠다. 1960년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가 독립하여 가봉공화국이 되었지만 흑인들의 그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그에게 명예로운 적도성십자훈장을 수여하여 경의를 표했다.

 

슈바이처는 한때 아프리카 주민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고향 마을로 귀향한 적이 있었다. 고향 기차역은 그를 맞이하기 위한 환영객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도착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모두 1등칸 앞에서 슈바이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저쪽 3등칸 플랫폼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우르르 몰려갔다. 한 기자가 물었다.

 

"박사님, 왜 3등칸에서 내리십니까?"  이에 슈바이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4등칸이 없어서요."

 


평생을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헌신과 봉사로 일관한 슈바이처 박사. 그에 대한 수많은 헌사가 있지만, 그런 미사여구보다 '3등칸에서 내린 슈바이처'가 나는 더 믿음이 간다.

 

 

[출처: 이야기 속에 담긴 긍정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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