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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병
그해 봄
병
도종환
그해 봄
도종환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나는 지쳐 쓰려져 있었고
병든 몸을 끌고 내다보는 창 밖으로
개나리꽃이 느릿느릿 피었다
생각해보면
꽃 피는 걸 바라보며 십 년 이십 년
그렇게 흐른 세월만 같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고 춘분이 지나고
들불에 그을린 논둑 위로
건조한 바람이 며칠씩 머물다 가고
삼월이 가고 사월이 와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점점 아득하고
꽃 피는 걸 기다리며 나는 지쳐 있었다
나이 사십의 그해 봄
병
도종환
마음속 불꽃이
병이 된다
가슴속 북풍이
병이 된다
불 같은 그리움
얼음 같은 외로움이
병이 된다
기나온 내 생애의
발자국마다
나로 인해 내린 비가
병이 되어 고인다
불 타며 불 타며
병이 된다
바람 불어 바람 불어
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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