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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절에 가서/보리수나무/지는 꽃 보며
오늘도 절에 가서
보리수나무
지는 꽃 보며
도종환
오늘도 절에 가서
도종환
오늘도 절에 가서 절집만 보고 왔다
요사채 아궁이 동자승이 두드리던 부지깽이만한
말씀 한 도막 못 얻어왔다
오늘도 절에 가서 절 뒤의 산줄기만 보고 왔다
오늘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왔다
십 년 넘게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마음속 한치도 못 들어가본 사람은 더 많았다
보리수나무
도종환
보리수나무 잎이 지고 있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당신은 말씀이 없으셔
사방은 적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뒷산 숲도 맞배지붕 위에 내려와
턱을 고이곤 먼 데 하늘을 바라볼 뿐
보리수나무 잎만 가끔씩 지고 있었습니다
범종 소리 사라진 쪽 바라보며
말이 없으신 당신을 쳐다보다
보리수 그늘 돌아나오는 저녁
쯧쯧, 번뇌의 속옷은 그냥 둔 채
겉옷만 갈아입고 싶어하다니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리수 열매가 짧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는 꽃 보며
도종환
꽃도
윤회하는 걸까
지는 저 꽃잎들은
이제 업을 다 벗고 가는 걸까
돌아오는 새들은
삼천대천세계 다 지나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나만 아직도
못 벗고 있는 걸까
업의 그물
육도윤회의 이 굴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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