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시

겨울강/겨울나기 - 도종환

by 행복한 엔젤 2018. 1. 3.
728x90
반응형

겨울강/겨울나기 - 도종환


 

겨울강

겨울나기

도종환

 

겨울강

도종환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얼음 속에 갇힌 빈 배 같은 그대를 남겨두고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굽이굽이 강길을 걷는다

그대와 함께 걷던 이 길이 언제 끝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어

새벽의 바다에 이르렀음을 끝까지 믿기로 한다

내기 이 길에서 끝내 쓰러진 뒤에라도

얼음이 풀리면 그대 빈 배만으로도 내게 와다오

햇살 같은 넋 하나 남겼다 그대 뱃전을 붙들고 가거나

언 눈물 몇 올 강가에 두었다 그대 물살과 함께 가리라

 

 

겨울나기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