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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좋은글]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끈

by 행복한 엔젤 2017.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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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끈

 

 

좋은글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끈

언어의 온도/이기주

 

 

 

집 근처에 조금 느린 아이들(아픈게 아니라 조금 느릴 뿐),

그러니까 발달 장애 아이들의 재활을 돕는 학교가 있다.

학교 앞 정류장은 등하교 시간이 되면 수업을 마친 학생과

학부모가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하루는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자(母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두 사람의 걸음새를 좀 더 들여다봤다.

 

 

자세히 보니 서로의 몸을 얇은 끈으로 연결한 채 걷고 있었다.

끈은, 줄넘기 줄 같기도 했고 등산용 밧줄 같기도 했는데,

한쪽은 학생의 왼손에 동여매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어머니 오른손에 칭칭 감겨 있었다.

 

왜 그런 거지? 고개를 갸웃했다.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외침에서

그들의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찻길로 내려가면 안 돼!"

 

 

어머니는 아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애를 먹는 듯했다.

길거리에서 아들의 동선을 통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끈으로 몸을 동여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일순, 임신부의 자궁 안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태아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다.

자궁 밖으로,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에선 그 줄을 끊어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의 몸뚱어리를

여전히 탯줄로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은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 없다는 듯.

 

 

잠시 뒤 나는 버스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 나와 모자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멀리서 바라본 어머니와 아들의 흐릿한 실루엣은,

서로의 몸을 생명줄(로프)로 연결한 체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의 어느 기슭에서 대자연과 맞서고 있는

산악인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그렇다면 저 어머니와 아들은 어떤 산을,

무엇을 위해 오르는 것일까.

 글쎄다.

어쩌면 저들은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 없이,

꽤 아득하고 특별한 여정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감히 오를 수 없는 그들만의 신성한 봉우리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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