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 좋은시/오 분간 ♬
좋은시
오 분간
나희덕
오 분간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 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생,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반응형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시] 아이들은 사는 것을 배운다 (0) | 2017.07.17 |
---|---|
[좋은시]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0) | 2017.07.16 |
[좋은시] 아이들은 신으로 부터 받은 선물이다 (0) | 2017.07.15 |
[좋은시] 빨리 크고 싶다 (0) | 2017.07.14 |
[좋은시] 사랑은 (0) | 2017.07.10 |
댓글